2003년에 개봉한 빅 피쉬(Big Fish)는 팀 버튼 감독의 작품 가운데서도 따뜻하고 먹먹한 여운을 남기는 영화다. 마녀와 거인, 서커스단과 신비로운 마을까지 동화 같은 이야기가 계속 등장하지만 영화의 중심에는 아주 현실적인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있다.
아버지 에드워드 블룸은 평생 자신의 인생을 믿기 어려울 정도로 과장된 이야기로 들려준다. 아들 윌은 어린 시절에는 그런 이야기를 좋아했지만 어른이 된 뒤부터는 아버지의 말을 믿지 않는다.
윌이 알고 싶은 것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야기 뒤에 숨어 있는 진짜 아버지의 모습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윌은 자신이 평생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던 이야기들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한다.
1. 평생 이야기를 만들어온 아버지 에드워드
에드워드 블룸은 이야기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다.
어디를 가든 자신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들려준다.
문제는 그 내용이 너무 믿기 어렵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마녀를 만났고,
거인을 만나 함께 여행했으며,
신비로운 마을을 발견했고,
서커스단에서 일했고,
운명처럼 한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고 말한다.
처음 듣는 사람에게는 재미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아들 윌은 같은 이야기를 평생 들어왔다.
심지어 자신의 결혼식에서도 아버지는 또다시 자신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준다.
윌에게는 점점 지겨운 허풍처럼 느껴진다.
2. 아버지의 이야기를 믿지 않는 아들
어린 시절 윌에게 아버지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한 놀라운 모험을 했던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의문이 생긴다.
아버지가 말하는 이야기가 정말 사실일까?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믿기 어려운 내용이 너무 많다.
결국 윌은 아버지가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고 싶은데 돌아오는 것은 항상 같은 이야기뿐이다.
그래서 두 사람의 관계는 멀어진다.
이 부분이 상당히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가 세상에서 가장 대단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성장하면서 부모 역시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3. 아버지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윌은 아버지가 많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오랫동안 거리를 두고 살았지만 이제 시간이 많지 않다.
윌에게는 반드시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다.
아버지가 죽기 전에 진짜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여전히 자신의 방식대로 이야기한다.
윌은 답답하다.
마지막 순간까지 아버지가 자신에게 솔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조금씩 질문이 달라진다.
정말 에드워드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4. 마녀의 눈에서 자신의 마지막을 보다
에드워드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는 마녀가 등장한다.
아이들은 마녀의 집에 찾아간다.
그리고 마녀의 특별한 눈을 들여다보면 자신이 어떻게 죽게 되는지를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에드워드 역시 자신의 마지막을 보게 된다.
하지만 영화는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바로 알려주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경험 이후 에드워드의 태도다.
자신이 어떻게 죽는지를 알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위험한 순간에도 겁을 내지 않는다.
“나는 이렇게 죽지 않는다.”
그 확신이 에드워드를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어쩌면 마녀의 눈이 실제로 미래를 보여줬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이야기를 믿었기 때문에 에드워드가 두려움 없이 살 수 있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5. 작은 마을을 떠나는 에드워드
에드워드는 자신이 태어난 작은 마을에 머무르기에는 세상이 너무 크다고 생각한다.
결국 밖으로 나가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여행을 시작하면서 거인 칼을 만나게 된다.
마을 사람들에게 칼은 무서운 존재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그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
칼이 나쁜 사람이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맞지 않는 작은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두 사람은 함께 더 넓은 세상으로 떠난다.
이 장면은 에드워드라는 인물을 잘 보여준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존재에게도 먼저 다가간다.
그리고 세상을 언제나 조금 더 특별하게 바라본다.
6. 너무 완벽해서 이상한 마을 스펙터
여행 중 에드워드는 우연히 스펙터라는 마을에 도착한다.
그곳은 이상할 정도로 평화롭다.
사람들은 행복하고 신발조차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편안하게 살아간다.
누구나 그곳에 머물고 싶어 할 것 같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떠난다.
자신에게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편안하고 완벽한 장소라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좋은 곳은 아니다.
에드워드는 아직 자신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다시 길을 떠난다.
7. 운명처럼 만난 산드라
에드워드의 이야기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아내 산드라를 만나는 과정이다.
서커스에서 우연히 한 여성을 보는 순간 에드워드는 사랑에 빠진다.
그 순간 세상의 시간이 멈춘 것처럼 표현된다.
사람들은 멈춰 있고 에드워드만 그녀를 바라본다.
하지만 그녀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서커스단장 아모스에게 정보를 얻기 위해 오랫동안 일한다.
한 달 동안 일하면 한 가지 정보를 알려주는 방식이다.
에드워드는 그녀의 이름과 학교 등 작은 단서들을 하나씩 얻는다.
그리고 마침내 산드라를 찾아간다.
8. 사랑을 위해 수선화를 준비한 남자
에드워드는 산드라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수선화를 준비한다.
산드라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집 앞을 가득 채운 노란 수선화는 빅 피쉬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다.
하지만 산드라에게는 이미 약혼자가 있다.
보통이라면 여기서 포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자신이 산드라를 사랑한다는 사실만큼은 포기하지 않는다.
결국 여러 사건을 거쳐 두 사람은 함께하게 된다.
현실이라기보다 동화 같은 사랑 이야기다.
하지만 윌이 어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금씩 알게 된다.
아버지가 과장했을지는 몰라도 산드라를 사랑했던 마음 자체는 거짓이 아니었다.
9. 아버지의 과거를 직접 찾아가는 윌
윌은 아버지의 이야기가 어디까지 사실인지 직접 확인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이야기했던 사람과 장소의 흔적을 발견한다.
놀랍게도 완전히 만들어낸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실제로 존재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실제로 있었던 장소도 있었다.
다만 에드워드는 현실을 그대로 전달하지 않았다.
평범한 사건을 훨씬 크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바꿔놓았다.
그제야 윌은 조금씩 아버지의 방식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에드워드는 자신의 인생을 숨긴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억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10. 사실과 진실은 꼭 같은 것일까
빅 피쉬를 보면서 가장 많이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다.
에드워드의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거짓말이 많다.
거인을 만났다는 것도 믿기 어렵고 마녀의 눈으로 자신의 죽음을 봤다는 이야기도 현실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모두 거짓일까?
영화는 사실과 진실이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에드워드가 산드라를 만나기 위해 했던 일을 과장했을 수 있다.
하지만 아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는 진짜다.
자신이 만난 사람을 거인이나 특별한 인물로 표현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자신의 인생에 얼마나 큰 존재였는지를 그렇게 표현했을 수도 있다.
이야기의 세부 내용은 달라도 그 안에 담긴 감정까지 거짓인 것은 아니다.
11. 아들이 처음으로 아버지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영화 후반부는 빅 피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병원에 있는 에드워드는 아들에게 자신의 마지막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부탁한다.
평생 아버지의 이야기를 싫어했던 윌에게 이제 반대 상황이 찾아온다.
아버지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아들이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윌은 처음으로 아버지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병원을 빠져나와 자동차를 타고 강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아버지가 평생 이야기했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거인도 있고,
서커스단 사람들도 있고,
과거에 만났던 수많은 사람이 에드워드를 배웅한다.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장면이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가 중요하지 않다.
12. 결국 커다란 물고기가 된 아버지
윌이 만들어낸 이야기 속에서 에드워드는 마지막으로 강에 도착한다.
그리고 아들은 아버지를 물속으로 보내준다.
에드워드는 거대한 물고기가 되어 헤엄쳐 사라진다.
영화 제목인 빅 피쉬가 가장 아름답게 완성되는 순간이다.
평생 자신의 삶을 거대한 이야기로 만들어왔던 사람이 마지막에는 정말 이야기 속 존재가 된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완성해준 사람이 바로 아들이다.
윌은 그 순간 아버지를 완전히 이해하게 된다.
아버지가 왜 평생 이야기를 만들었는지를 말이다.
13. 장례식에서 알게 되는 진짜 모습
에드워드의 장례식에는 윌이 아버지의 이야기에서 들었던 사람들이 찾아온다.
그런데 실제 모습은 조금씩 다르다.
거인처럼 묘사했던 사람도 실제로 존재한다.
서커스단 사람들도 존재한다.
이야기 속 모습만큼 과장되지는 않았지만 분명 아버지의 인생에 있었던 사람들이다.
이 장면에서 윌은 확실히 알게 된다.
아버지가 모든 것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다.
실제 사람과 실제 사건에 상상력을 더해 자신만의 이야기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 덕분에 평범한 인생이 누구보다 특별한 인생으로 남게 된다.
14. 사람은 결국 이야기로 남는다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 남는 것은 무엇일까.
사진이나 물건도 남는다.
하지만 가장 오래 남는 것은 어쩌면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우리 아버지는 이런 사람이었어.”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어.”
누군가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면 그 사람의 일부는 계속 살아 있는 셈이다.
에드워드는 평생 자신의 이야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윌은 그것을 지겨워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윌이 그 이야기를 다음 세대에게 들려준다.
결국 아버지의 이야기는 아들에게 이어진다.
15. 아버지가 된 뒤 보면 다르게 느껴질 수 있는 영화
빅 피쉬는 어린 시절 봤을 때와 나이가 들어 다시 봤을 때 느낌이 많이 달라질 수 있는 작품이다.
처음에는 마녀와 거인, 서커스와 신비로운 마을 같은 판타지 요소가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보면 윌과 에드워드의 관계가 더 크게 보인다.
부모와 자식은 서로를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의외로 부모가 젊었을 때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자식에게 부모는 처음부터 부모였던 사람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부모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고 꿈이 있었으며 사랑했던 순간과 실패했던 순간이 있었다.
윌 역시 너무 늦게 그것을 알아가기 시작한다.
16. 빅 피쉬를 보고 난 후기
빅 피쉬는 판타지 영화처럼 시작하지만 마지막에는 가족 이야기가 가장 크게 남는 영화였다.
처음에는 윌의 마음도 이해된다.
아버지에게 진짜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매번 마녀와 거인 같은 이야기만 한다면 답답할 것 같다.
“그래서 실제로는 무슨 일이 있었는데?”
계속 묻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따라가면서 생각이 조금씩 달라진다.
어쩌면 에드워드에게는 그것이 진짜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
정확히 몇 년 몇 월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순간 자신이 무엇을 느꼈는지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특히 마지막에 윌이 아버지 대신 이야기를 만들어주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평생 아버지의 이야기를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던 아들이 결국 아버지의 마지막 이야기를 완성한다.
그 순간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긴 갈등도 끝난다.
윌은 아버지에게 사실을 말하라고 요구하는 것을 멈추고 아버지가 세상을 바라보던 방식으로 마지막 순간을 함께한다.
그리고 장례식에서 이야기 속 사람들이 실제로 나타나는 장면을 보면 묘한 감정이 든다.
에드워드의 이야기는 거짓말이면서 동시에 거짓말이 아니었다.
조금 과장되고 조금 아름답게 바뀌었을 뿐 그 안에는 실제 사람들이 있었고 실제 인생이 있었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제목인 빅 피쉬도 다르게 느껴진다.
작은 어항 속에 있는 물고기는 그 크기만큼만 자라지만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면 훨씬 크게 자랄 수 있다는 이야기처럼, 에드워드는 평범한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 속에서 누구보다 거대한 삶으로 만들어냈다.
결국 사람의 인생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느냐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 삶을 어떻게 기억하고 어떤 이야기로 남기느냐도 중요하다.
그리고 누군가 그 이야기를 계속 기억해준다면 그 사람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은 언젠가 떠나지만 그 사람의 이야기는 남은 사람들 속에서 계속 살아간다.
그래서 빅 피쉬는 보고 있을 때보다 영화가 끝난 뒤 가족을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이었다.